평화를 깨고 북한의 도발이 한창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1980년 5월의 광주에 비하면 '찻잔 속의 태풍'일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1980년 그날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199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초석이 다져졌기 때문이다.
당시의 한국의 실세는 전두환을 필두의 하나회였다.
하나회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이루어진 친목회였고 신군부의 주축세력이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중앙 정보부장 대행을 역임한다. 그렇게 한국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실세로 등극한다.
신군부의 국가 통치를 저지하려고 가장 먼저 움직인 세력은 대학생이었다.
수도권 대학에서 시위가 이어진다.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내리고 휴교령을 내리고 강경하게 대응한다.
이것이 5.18 민주화 운동, 항쟁의 발발 원인이다.
1980년 5월 18일 신군부에 대한 저항과 한국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전남대학교 학생이 모인다.
지금은 다르지만 당시의 대학생은 지식인층에 속했다.
구호는 비상계엄 해제,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시위행진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전두환의 명령으로 집결한 신군부의 생각은 달랐다.
총성이 울리고 대학생이 쓰러진다. 시위대는 피를 흘렸고 그것을 목격한 광주시민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10일간 광주시민은 신군부와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우리는 5월 18일 단 하루만 기억한다. 하지만 그날의 광주 시민은 목숨을 걸고 10일간의 항쟁을 치렀다.
그래서 지금의 남북 간의 불화는 찻잔 속의 태풍과 같은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의 피를 볼 확률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10일간의 항전은 166명의 사망자과 3천여 명의 부상자를 낳는다.
1980년 5월 18일이 오기 전까지의 광주는 지금의 우리와 같은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매일 마주치던 이웃이 신군부의 총탄에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당시의 광주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모든 시민이 뭉쳤기 때문에 상가가 텅텅 비었다. 하지만 흔한 좀도둑 하나 없었다.
2020년 미국 흑인의 인종차별반대 시위 중 한인마트가 수십 개 털리는 뉴스를 쉽게 볼 수 있다.
5.18 항쟁 이후 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현재의 모습이다.
40년 전 광주의 시민의식이 지금보다 훨씬 우수했다.
그날의 희생이 있어 지금의 행복이 있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듯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있다.
전두환은 건강하다. 통장 잔액은 29만 원 밖에 없지만 아직도 호화저택에서 살고 있다.
너무 건강해서 골프를 치느라 재판에 불출석하기도 한다.
신군부의 주축 하나회도 건재하다. 모두 성공가도를 달리고 지금은 은퇴해 평화롭게 부를 누리고 있다.
그들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의 광주시민은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여준 광주시민에게 우리가 해주어야 할 것은 딱히 많지 않다.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날의 희생을 욕보이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과제이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사회의 주축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치 그날의 광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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